![]() 신동호 저물 무렵 비행장의 긴긴 가로등을 따라 서부시장 어머니의 바구니를 들어야 했던 나는 형 다니는 농업고등학교 운동장보다 무지무지 커다란 미군부대 철조망 옆에 코딱지같이 붙은 근화국민학교 싸움대장, 머리통만한 주먹을 가진 검둥이들이 부러워 매일 손가락을 꺾어보면서 힘차게 달려나오는 하학길 양키들에게 사탕과 초컬릿을 얻어먹는 대가로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은 언제나 수월하게 생각되었습니다 덜 여문 자지를 보여주거나 엉덩이를 까고 제 이름을 쓱쓱 써대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철조망 너머로 날아오는 단맛과 선생님의 화난 얼굴과 형의 비웃음과 썩어가는 이빨의 아픔과 어머니의 근심과 혼돈스러운 일련의 일들 속에서도 우리들은 늘 배고픈 눈을 뜨고 철조망 앞을 지나다녔습니다 여름마다 우리들은 소양강 자갈밭에서 놀다가 비행기 연기처럼 길어지는 그림자를 늘이고 자라나는 키를 다투며 끝없는 철조망의 곁을 따라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물을 정성스레 주고 싶은 풀 한 포기 없는 집 양색시들이 많이 사는 동네 목욕을 가려면 시내의 목욕탕을 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당부를 잊지 않는 예쁜 누님에게 씀씀이 좋고 화려한 색시들은 언제나 당당했습니다. 우리반 몇놈 튀기들이 그렇듯이 큰 나라의 국적을 뽐내며 마당의 수돗물을 먼저 쓰려는 싸움에서 우리 누님은 말없는 양보만 계속 했습니다 무엇이 저들을 승리에 익숙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저들을 깔보는 데 익숙하게 만들었을까 또 무엇이 누님을 주눅들게 한 것이며 우리들의 생활을 순종과 굴욕으로 몰아넣었을까 동네를 씨끄럽게 하는 헬리콥타의 위용일까 그물로 감춰논 부대 안의 거대한 대포일까 아니면 돈이 많다는 미국의 자본주의일까 그것도 아니면 분단된 조국 때문일까 우리의 가난일까 비굴일까 겨울을 보내고 강 건너 중학교를 가게 되어 잊혀진 근화국민학교 옆 철조망에 핀 코스모스 힘세고 겁없는 아이들에게 팔뚝질을 배우면서 우리들의 사타구니에 새까만 털이 돋기 시작하면서 우리들의 것이었던 부끄러움과 분노와 우리들의 제한된 놀이터와 우리들의 운동장을 그리고 빼앗긴 일터와 강변의 아름다운 논밭을 그리며 집으로 가는 길 그때부터 우리는 철조망 너머로 매일같이 팔뚝질을 날려보냈습니다. ________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곁에 두었던 詩와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시작하면서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 詩를 건너주고픈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근화국민학교'를 나왔다는 그는, 내게 그 학교가 아직도 춘천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이 詩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처음 詩를 쓰게 만들었던, 신동호 선배의 바로 그 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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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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