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리스> 위험하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은 ‘관계’ - 강유정
영화의 시작 부분, 카트린느 브레야의 인장과도 같은 오프닝이 지나가면 이런 자막이 떠오른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835년 2월 파리, 악마적 후작 부인과 호색가 발몽의 소설 <위험한 관계>를 즐겨 읽던 시절’이라고 말이다. 소설 <위험한 관계>는 프랑스 혁명 전 구제도의 모순을 계약결혼과 혼외정사의 문란함에서 찾았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은 곧 신분과 재산 정도에 따른 계약이었던 당시, 애정과 결혼이라는 공식은 성립할 수 없었다.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라는 개념이 프랑스 혁명 이후 근대화의 산물이었다면, 당시는 이와는 정반대로 낭만적 사랑은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찾아야 한다고 믿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여러 번 영화화됐던 <위험한 관계>는 쾌락을 위해 시작했던 ‘관계’가 위험하고 치명적인 것이 되어 목숨을 위협하는 아이러니를 다루고 있다. 이 서간체 소설에는 완전한 사랑 혹은 생애 단 한 번뿐인 진정한 사랑이라는 개념이 사랑은 게임이라는 전제 안에 녹아 있다. <위험한 관계>란 목숨을 건 치명성을 전제로 성립되는 수식인 셈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굳이 <미스트리스>가 <위험한 관계>를 즐겨 읽던 시절이라고 운을 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영화 곳곳에서 ‘나쁜 소설’ 하나가 호색한과 바람둥이에 대한 이상한 오해를 낳고 있다며 불평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그렇다면 과연 <미스트리스>는 <위험한 관계>와 유사한 작품일까? 대답부터 하자면 이 작품은 <위험한 관계>의 정 반대편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위험한 관계>가 생과 사를 갈라놓는 치명적이며 일회적인 사랑을 논하고 있다면 <미스트리스>는 죽음을 드라마틱한 절정이 아니라 구차한 소멸의 끝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스트리스>에는 그토록 치명적인 격정도, 목숨을 건 사랑도 없다. 다만 죽어갈 때까지 천천히 삶의 에너지를 소모하듯 스스로의 생명과 욕망을 탕진해가는 불쌍한 사랑기계들만이 등장할 뿐이다.
- 강유정 영화평론가
by 밤의 숲 | 2008/08/06 09:31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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